여의도순복음수원교회  
콘텐츠로 건너뛰기

궁금하시죠?

자료실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12.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3-24 14:20
조회
11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12.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꿈과 비전으로 독립된 이스라엘의 기초 다진 벤구리온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이사야 35장 6절)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역사적인 독립을 맞이했다.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고통이 요구되었다.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런 건국 영웅들 중에 벤구리온(1886년 10월 16일~1973년 12월 1일)과 벤 예후다(1857년 1월 7일~1922년 12월 16일)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있다.

벤구리온은 초대 총리로서 현대 이스라엘의 기초를 놓았던 사람이다. 벤 예후다는 수천 년 전에 죽었던 히브리어를 되살려 지금의 현대 히브리어로 재탄생시킨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독립을 맞이했다. 많은 유대인들이 꿈에 그리던 본향으로 돌아왔지만 이스라엘의 홀로서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지만 서로 말도 통하지 않았고 생활풍습도 달랐다. 그들에게 주어진 땅은 버려진 황폐한 땅과 같았고 배고픔과 풍토병의 연속이었다.

척박한 땅을 보며 좌절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벤구리온이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라는 이사야 35장 6절의 말씀이다.

1. 비전: 마음의 소원

벤구리온은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프윈스크는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1940년 9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후 마을은 거의 폐허로 남게 되었다.

벤구리온의 어머니가 죽은 후 1906년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폴란드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은 피할 수 있었지만 벤구리온과 그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렌지 과수원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던 벤구리온은 터키 이스탄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이때 그는 스스로 벤구리온, '아기 사자'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공부를 마치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 온 벤구리온은 시온주의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벤구리온의 키는 152㎝에 불과했고 외모적으로는 수천 년 만에 독립한 이스라엘을 이끌 면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분명한 비전을 보여주셨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라고 말씀한다. 비전과 야망(野望)은 큰 차이가 있다. 야망은 땅으로부터 나오지만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야망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만 비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벤구리온은 제1차 중동전쟁(1948)을 승리로 이끌었고 초대 총리가 되었다.

2. 키부츠(Kibbutz)와 모샤브(Moshav)운동

독립을 쟁취한 이스라엘은 대내·외적인 위기와 혼란을 겪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용인할 수 없었던 아랍 국가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내적으로는 척박한 땅에서 생산되는 부족한 식량과 민족적 화합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유대인이지만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벤구리온은 '항상 쫓아다니는 배고픔과 말라리아의 위협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다'라는 격언을 국민들에게 강조하며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물을 끌어 들여 각 키부츠와 모샤브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강이라고는 요단강 밖에 없고 수자원은 갈릴리 호수 밖에 없다. 우리 몸의 피가 폐에서 동맥과 정맥을 타고 몸 전체에 퍼지듯이 갈릴리 호수에 수관을 심어 이스라엘 전역으로 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큰 국책사업이었기에 불가능하다는 반대 의견들이 팽배했다. 그러나 벤구리온은 이때 성경에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6)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백성들을 설득했다.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공동농장인 키부츠와 모샤브는 존재했지만 요단강 근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수로의 완성으로 말씀에 기록된 대로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게 되었고 이스라엘 농업 생산의 기반인 키부츠와 모샤브 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로 척박한 땅이지만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농업 수출국이 되었다. 1970년 벤구리온은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그가 일구었던 네게브 사막에 있는 '쓰데 보케르 키부츠'(Kibbutz SdeBoker)로 돌아가 숨을 거둘 때까지 사막의 농토를 한 평이라도 더 개간하겠다는 신념으로 일을 했다.

1973년 그는 4평짜리 방에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의 소박한 유품을 남기고 혁명가이며 개척자였고 위대한 정치가였던 화려한 87세의 향년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했다.

3. 이스라엘의 첫 얼굴

이스라엘의 영토는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크다. 그러나 해마다 약 4900만 명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있다. 작은 나라에 비해 많은 여행자들과 순례자들이 이스라엘을 찾고 있다.

접경 국가들이 대부분 이슬람 국가들이어서 대부분 육로가 아닌 항공기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있다. 다른 나라 공항과 다른 점은 우리나라만 해도 공항공사가 보안과 경비를 책임지지만 이스라엘 공항은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경우에 따라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관문인 이스라엘 최대국제공항을 벤구리온 공항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공로를 잊지 않고 있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

출처 : http://www.fgnews.co.kr/front/view.do?first_category_id=3&second_category_id=266&id=123789&renew=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