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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14. 세대를 뛰어 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 다윗과 요나단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4-21 09:12
조회
4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14. 세대를 뛰어 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 다윗과 요나단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삼하9:13)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를 낳은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에 못지않은 우정이 성경에도 기록돼 있다. 다윗과 요나단의 세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우정이다. 그런데 관중과 포숙아와는 달리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우정으로 표현하기에는 둘의 나이는 무려 30세 이상 차이가 난다.


1. 이스라엘의 초대 군대 장관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시대는 세 명의 왕이 40년 씩 똑같이 통치를 했다. 수많은 용사들이 성경에 기록되었지만 각 시대를 대표하는 군대장관이 있었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장관(삼하 2:8)으로 사울이 죽은 후에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섬겼다.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삼하 8:16; 20:23)이었고 브나야는 솔로몬의 군대장관이었다(왕상 4:4).

이스라엘은 사울 왕을 시작으로 신정국가에서 왕정국가로 전환되었다. 사울은 40세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다(삼상 13:1). 하지만 집권 초기에는 아직 왕권이 강화되지 않았고 군대의 체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사울은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블레셋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삼상 13:1~3). 왕으로서 치르는 첫 전쟁이었다. 사울은 3000명 정도의 군대로 블레셋과 전쟁에 나섰다(삼상 13:2). 요압이 조사한 다윗의 군대가 130만 명이었던 것을(삼하 24:9) 감안할 때 초기 사울 왕의 군대규모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 시기에 초대 군대 장관의 역할은 한 사람은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가 정비되고 아브넬이 등장하기 전까지 군대를 직접 지휘했다. 사울은 이스라엘 군대를 둘로 나누어 2000명은 자신이 직접 지휘를 하고 1000명의 군사를 요나단에게 맡겼다(삼상 13: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전쟁에 나갈 군인은 20세 이상이 되어야 했다(민 1:3). 사울이 40세에 왕이 되어 2년 후 전쟁을 하게 되었으므로 이때 사울의 나이는 42세였을 것이고, 요나단도 전쟁에 동원되어 군대를 지휘했다는 걸 볼 때 최소한 20세는 넘었을 것이다. 사울은 요나단을 스무 살쯤에 낳았던 것 같다.

2. 십 광야 수풀 속의 만남

다윗과 요나단의 공식적인 만남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 사울의 궁정으로 초대 받았을 때 이루어졌다(삼상 18:2).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는 말이 사무엘상 18장 1~3절에서 2번이나 등장하듯이 이날 이후 요나단은 각별한 사랑과 배려로 다윗을 보살폈다.

요나단과 다윗의 나이 차이는 사울의 죽음과 다윗이 유다 왕으로 등극할 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울과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같은 날 목숨을 잃었다. 사울은 4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삼상 13:1) 40년을 통치하다(행 13:21) 80세에 죽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30세에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추대되었다(삼하 5:4). 사울과 다윗의 나이 차이가 50세 정도 나는 셈이다. 사울과 요나단의 나이가 20세 정도 차이가 나니까 다윗과 요나단의 나이 차이는 산술적으로 30세 정도가 된다. 요나단에게 다윗은 아들 뻘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했다. 요나단이 아들 같은 다윗을 사랑한 것은 단순한 우정만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에 대한 인정이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십 광야로 도망을 했을 때,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을 찾아가 다윗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삼상 23:19). 요나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던 다윗을 찾아갔다. 그리고 십 광야 수풀에 숨어 있는 다윗을 만나 이렇게 말을 한다. '곧 요나단이 그(다윗)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 23:17).

요나단이 다윗의 다음이 되겠다고 한 것은 다윗이 먼저 왕이 되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겠다는 말이 아니다. 나이 차이를 봤을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말의 뜻은 기꺼이 다윗의 신하가 되겠다는 뜻이다. 다윗만 없다면 왕위는 자기의 것이 된다. 아니 원래 자기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미생(未生) 다윗을 보호하며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3. 다윗의 지은보은(知恩報恩)

관포지교는 견해에 따라서는 아름다운 우정이 아니라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관중과 포숙아가 동업할 때 관중이 자기 몫으로 더 많이 떼어 갈 때도 포숙아는 관중이 자신보다 가난하니 더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전쟁에 나가서 맨 뒤에 있다가 싸움이 시작되면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관중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왕을 설득해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시켰지만 관중은 자신의 후임으로 포숙아를 추천하지 않았다. 이때도 사사로운 인연보다는 나라를 걱정한 것이라고 관중을 칭찬했다.

이와는 달리 다윗은 요나단이 죽은 후 그의 자녀와 기업을 끝까지 지켜주며 요나단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 9:1). 다윗은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의 혈육을 찾아 은혜를 갚기 원했다.

이때 다윗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숨어 있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존재를 알게 됐다. 요나단과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모가 다섯 살밖에 안 된 므비보셋도 같은 죽음을 당할 것을 걱정해 급히 안고 도망가다 떨어뜨려 두 발을 다 절게 되었다(삼하 4:4). 그런데 므비보셋이 다윗을 만났을 때 므비보셋에게 미가라는 아들이 있었다(삼하 9:12). 다섯 살이었던 므비보셋이 자라 성인이 되어 자녀를 갖게 된 것이다. 요나단이 죽은 지 최소한 10~15년은 넘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다윗은 그가 은혜를 갚아야 할 요나단의 남은 혈육이 있는지 찾고 있었던 것이다. 므비보셋을 찾은 다윗은 주저할 것 없이 자신의 왕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하며 같은 상에서 먹도록 했다(삼하 9:13).

3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했던 요나단과 왕위에 오른 뒤 계속된 전쟁을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의 혈육을 찾아 은혜를 갚으려 했던 다윗의 이야기는 작은 이권 앞에서 쉽게 무너져 버리는 인간관계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앙인으로서 또한 인격체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삶의 지침이 된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감)

출처 : http://fgnews.co.kr/front/view.do?first_category_id=3&second_category_id=266&id=123793&renew=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