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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은혜의 시작 ‘중생의 복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0-25 14:53
조회
49
복음이란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 또는 ‘복된 소식’을 의미한다. 조용기 원로 목사는 이 기쁜 소식을 ‘오중복음’(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천국과 재림)과 ‘삼중구원’(영적, 환경적, 육체적)이라는 말로 보다 명료하게 표현하였다. 여기서 전자가 우리의 신앙을 위한 이론과 교리라면 후자는 그 이론과 교리를 실천하는 실제와 적용을 의미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적지 않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높은 종교적 윤리만을 요구하거나, 또는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시리즈로 연재하게 된 일은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우는 데 있어 매우 뜻깊은 일이다.

오중복음의 첫 번째는 중생의 복음이다. 중생이란 말은 ‘새로운 출발’, ‘재생,’ ‘소생’, ‘재창조’를 의미한다(마 19:28; 딛 3:5).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 그리고 그가 만든 피조물과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선악과 사건’을 통하여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함으로써 육체의 죽음, 환경의 저주 그리고 영적인 죽음의 삼중죽음, 즉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로부터 분리되고 말았다.

하나님 없는 존재가 된 인간은 다양한 종교와 철학으로 죽음과 고통의 굴레로부터 구원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상의 죽음 및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죄로 인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즉, 중생은 타락 전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의 경험은 인간의 ‘회개’를 필요로 한다. 회개란 가던 길에서의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이 삶의 방향이 죄의 길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죄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 인간은 예수를 앎으로 자신이 죄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식한다(눅 5:8). 그러므로 그를 통해 죄를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말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회개는 죄인의 길에서 의인의 길로, 마귀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통치로,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적대적 관계에서 화합의 관계로의 방향전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직시해야 할 점은 중생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이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거듭나다’라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나다’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다시 말해서, 중생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행위이다. 더욱이 5절의 ‘성령으로 난다’는 표현은 이 출생의 신적 집행자가 성령임을 가리킨다. 태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며, 생명을 가져오셨듯이 중생에 있어서도 바로 그 성령이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시는 것이다.

이러한 중생의 결과로 우리는 칭의와 성화라는 은혜를 받는다. 칭의(‘빚의 면제’)라는 말의 뚜렷한 특징은 선언적 측면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의롭게 혹은 정의롭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즉, 칭의란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의 죄를 면제하고 더 이상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님의 법적인 선언을 가리킨다.

이렇게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은 또한 거룩하게 된다(성화). 거룩한 삶이란 죄로부터의 ‘분리’되어, 하나님의 ‘택하시고’ ‘소유된’ 백성으로서(벧전 2:9) 모든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것들과는 구별된 순결함을 지닌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단번에 사함을 받아 의인의 신분을 얻는 것을 칭의라 한다면, 성화는 삶의 마지막까지 부단히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점진적 과정의 측면을 가진다. 이러한 성화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앞에 함께 모일 때 완성에 이르게 된다(요일 3:2).

중생은 은혜의 시작이다. 즉,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해 의의 길로 돌아섰지만 또한 성화의 완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과 우리 나름대로의 부단한 노력과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출처:순복음가족신문 http://www.fgnews.co.kr/front/view.do?first_category_id=75&second_category_id=109&id=116302&renew=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