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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4. 모세와 바로의 딸 핫셉수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2-02 19:11
조회
6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4. 모세와 바로의 딸 핫셉수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야훼의 군대를 인도할 리더로 길러진 모세

430년의 노예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낼 위대한 선지자이며 지도자가 될 갓난아이와 정치적 야심이 가득했던 이집트 공주 핫셉수트(Hatshepsut, B.C.1508~1458). 훗날 이집트의 파라오(바로)가 된 바로의 딸과 아기 모세의 만남을 출애굽기 2장 5~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1) 출애굽과 이집트 왕조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했으며 모세와 맞섰던 바로 왕은 누구였는지에 대한 논쟁은 수 천년 동안 이어져 왔다. 고고학적인 발굴과 고문서 판독 능력의 향상은 성경의 기록뿐만 아니라 이집트 문서를 포함한 근동의 문서를 성경과 대조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탄소연대측정과 같은 과학적 접근과 기술의 접목 등도 출애굽 사건을 조명하는데 획기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출애굽의 연도는 대략 주전 13세기와 주전 15세기 설로 나뉘고 있다. 복음주의 계열에서는 출애굽의 연도를 주전 15세기, 즉 주전 1400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는 열왕기상 6장 1절과 사사기 11장 26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 열왕기상 6장 1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4년째 되던 해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연도에 따라 출애굽의 연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주전 966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주전 957년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자의 학설을 따른다면 출애굽의 연도는 주전 1437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전 966년에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10년 이내의 차이에 불과해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출애굽 시점을 주전 15세기로 보는 데는 큰 변화가 없다. 주전 15세기 이스라엘의 역사에 비해 이집트의 역사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이때 고대 이집트 왕조는 신왕국 시대였으며 주전 1293년까지 이어졌던 제18왕조였다.

2) 모세와 이집트 공주의 만남

이집트의 18대 왕조는 고대 왕국의 영광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었다. 18대 왕조의 문제는 아들이 귀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 몇 명 안 되는 여왕도 이때 탄생하게 된다. 그 여왕의 이름은 핫셉수트이다. 핫셉수트는 18대 왕조의 세 번째 왕이었던 투트모세 1세가 그의 정실 왕비 사이에 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나이가 차자 투트모세 1세는 핫셉수트를 이복동생이었던 투트모세 2세와 결혼을 시켰다. 그러나 투트모세 2세와의 사이에서도 자녀가 없었고 병약했던 투트모세 2세는 일찍 죽었다. 투트모세 2세가 죽기 전 다른 후궁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니 핫셉수트의 아들에 대한 열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을 하러 나일강가로 내려갔다. 거기서 갈대 상자에 들어 있던 태어난 지 3개월 밖에 안 된 잘 생긴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출 2:2). 갈대 상자를 열어 울고 있는 아기를 보는 순간 히브리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울고 있는 아이를 건져 품에 안았을 때 히브리 사내아이를 다 죽이라는 아버지의 명령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내아이의 이름을 '물에서 건져 냄'이라는 뜻과 '낳은'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모세'라고 짓는다. 그녀가 낳은 아들로 삼고자 했던 열망과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와 남편인 투트모세 2세의 이름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녀에게 온 모세를 병약한 남편의 뒤를 이어 왕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바로의 딸과 모세의 인연은 성경에 단 11절(출 2:5~15)만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살인죄가 탄로날까봐 이집트를 떠나 왕국과의 인연을 끊은 이후에도 핫셉수트의 정치적인 야망은 식지 않았다. 핫셉수트는 후궁의 자식이었던 투트모세 3세를 왕으로 세워 21년 동안 이집트를 섭정했다. 많은 학자들은 핫셉수트가 섭정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무려 54년을 통치했지만 그중에 21년을 핫셉수트의 그늘에 있어야 했던 투트모세 3세는 핫셉수트가 죽은 후 핫셉수트의 치적을 지우는 일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핫셉수트의 기록은 많이 남아 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핫셉수트가 18대 왕조의 5대 파라오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3) 갈대 상자의 아이와 야훼 군대의 리더

모세와 이집트 공주와의 만남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갈대 상자이다. 갈대 상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테바'이다. 이 단어는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창 6:14; 7:1; 9:10)와 모세를 태운 갈대상자 외에 성경 다른 곳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는 특별한 단어이다.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의 진을 칠하는 것은 방주를 만드는 과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왕은 히브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한다(출 1:22). 이집트인들은 악어 모습을 한 소베크(Sobek)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히브리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그들이 신으로 섬기고 있던 나일 강 악어의 밥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모세는 갈대상자 '테바'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었다.
출애굽기 12장 41절은 430년이 끝나고 그 날에 '야훼의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야훼의 군대라고 표현한 첫 구절이다. 출애굽 사건은 70여 명의 족장 세력이었던 이스라엘이 430년 만에 국가가 되어 이집트에서 나온 사건이다. 원시 씨족 사회가 아닌 국가는 법과 질서, 군사력과 행정 조직이 필요하다. 20세부터 60세에 이르는 장정 60만 명 외에 아이와 여자들, 노년을 포함하면 최소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리더십이 필요했다. 모세는 당대 초강국 이집트의 왕자로 길러졌다. 사회 문화 정치 군사 행정 법 등 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한 모든 것을 바로의 궁정에서 배우고 익혔다. 정치적 야심이 가득했던 그의 양어머니 때문에 혹독한 훈련이 뒤따랐을 것이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빠르게 국가로서의 면모를 잡아 나갔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음으로서 신정국가로서의 법적인 체계를 완비하게 되었다. 바로의 딸은 나일강가에서 갈대 상자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자신의 아들로 만들어 이집트의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모세는 야훼의 군대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리더로 길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세와 바로의 딸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

출처 : http://www.fgnews.co.kr/front/view.do?first_category_id=3&second_category_id=266&id=123760&renew=001